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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리 부안임씨 동족조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296
한자 世宗里扶安林氏同族組織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시기/일시 1870년 - 부안임씨 종약 작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7월 16일 - 임씨가묘에서 불천위 제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음력 10월 3일 - 부안임씨 제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1월 초 - 양양부사공 임목의 시향제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부안임씨의 동족조직.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전통 동족마을을 대표하는 세종리[옛 양화리]의 부안임씨들은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집안을 결속시키기 위하여 종약(宗約)[종중이 모여서 종회(宗會)의 운영에 관하여 정한 규약]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동족의 결속을 다지는 공동제의로 불천위(不遷位)[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제례와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를 존속시켜 왔다.

제의 자료는 부안임씨 전통과 가통(家統)[집안의 계통(系統)이나 내림]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당시 생활상이 어떠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870년에 작성된 부안임씨 종약(扶安林氏宗約)은 부안임씨들이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며 집안을 결속시킨 규약이다.

부안임씨 종약 절목 17조를 보면 19세기 말 상황을 배경으로 세상의 풍속이 퇴폐하여짐에 따라 종족의 화합과 도덕적 재결속을 강조하고 있다.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는 부안임씨종약서[1875년]에서 “부안임씨로 연기·공주 사이에 거주하는 이들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모두 착하고 온순하여 남을 질투하거나 이기는 습관이 없다”라고 칭탄(稱歎)[칭찬하고 감탄함]하고 있다.

[종약의 내용]

1870년에 작성된 종약[1870년|임덕곤(林德坤)]은 17조의 절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운데 모든 조목이 구체적인 실효를 목표로 철저하게 실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종족의 화합과 도덕적 재결속을 기대하면서 종족 간 시비(是非)[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다툼]나 쟁송(爭訟)[서로 다투어서 법에 호소하여 판결을 구함]을 경계하고, 만약 문제가 있으면 먼저 문장(門長)[한 문중(門中)에서 항렬과 나이가 제일 위인 사람]에게 아뢰어 가부(可否)[옳고 그름]를 밝히고 곡직(曲直)[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시비와 쟁송을 없애도록 조처하고 있다.

절목 제1조에는 충효열·우애 표창 조항, 과거 급제자·관직에 오른 자의 명단을 관리한다.

제3조에서는 과거에 응시하는 자가 있으면 종중으로부터 다소간의 보조를 받는다.

제4조에서는 관직에 올라 봉록(俸祿)[벼슬아치에게 일 년 또는 계절 단위로 나누어 주던 금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받는 종족은 홀로 부귀를 누리지 말고 곤궁한 일가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절목 제8조에는 종족 간에 관청에 글을 올려 시비를 일으키는 자는 옳고 그름을 그만두고 종인(宗人)[촌수가 아주 먼 일가]들이 일제히 성토(聲討)[여러 사람이 모여 사회에 끼친 잘못을 소리 높여 규탄함]한 후에 본 사건의 옳고 그름을 반드시 종중에서 처결한다는 내용이다.

제10조에서는 송사가 없지는 않겠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필시 잘못이 먼저 관청에 글을 올린 자에게 있다고 한다. 절목 내용을 보면 그러한 종족 결속과 자체 논리의 유지 방책이 강하게 보여진다.

특히 제11조에 대소사를 물론하고 모두 문장이 결정한다는 조항 같은 경우도 매우 강력한 문중 결속의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제15조에서는 3월과 9월 초하룻날 제종(諸宗)[한 겨레붙이의 본종과 지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종가에 모여 종족들 사이에 충·효·우가 현저하고 학문으로 과한에 오른 자가 있으면 책에 기록하고 거친 습관이 있는 자는 일일이 벌을 내린다는 것도 부안임씨 가문이 지켜온 문중 전통이었다.

[종가의 제례]

세종리 부안임씨는 전서공파로 대부분 임난수의 둘째 아들 임목의 양양공파 후손이어서 종중 활동으로는 불천위 제례와 시제가 있다.

숭모각(崇慕閣)에서는 임씨 시조 충절공 외 12현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3일 전국의 부안임씨들이 모여 제향(祭享)[제사]을 지낸다.

전서공 임난수의 불천위 제사는 임난수의 기일인 음력 6월 21일을 양력으로 7월 16일에 남면 나성리 임씨 가묘(林氏家廟)에서 지낸다.

임씨 가묘에서는 제관들이 제의를 올린다. 제관은 양양부사공의 시향 때와 마찬가지로 초헌관(初獻官)·아헌관(亞獻官)·종헌관(終獻官)과 축관(祝官)·집례(執禮)·직일(直日)이 제례를 진행한다.

양양부사공 임목의 시향제는 11월초에 지내고 이튿날에 그 아래 8대조까지 차례로 제사를 지낸 다음 일요일에 5·6·7대조의 시향을 한꺼번에 모신다.

제물은 각종 해산물과 쇠고기의 모든 부위, 날짐승으로는 닭을 쓴다. 포는 문어·상어·육포·명태 등 여섯 가지이고, 탕은 두부탕·쇠고기탕·닭탕·명태탕·홍합탕 등 오탕을 쓴다.

다른 제물로는 조청, 약과, 정과 등을 제물로 쓴다.

제관은 초헌관·아헌관·종헌관과 배축·집례·직일 등이다. 음복례를 한 후 종중회의를 한다.

종중은 위토(位土)[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던 논밭]를 소유하고 있으며, 정초에 정기총회를 열어 종중의 운영과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결산 보고를 한다.

시향 시제를 올리고 난 후 모여서 당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기도 한다. 정기 총회 외에도 특별 안건이 있을 때는 이사회를 연다.

[의의와 평가]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을 대표하는 동족마을 세종리의 다양한 공동체 조직과 동족 활동을 보여 주는 사례로, 부안임씨들이 가문의 전통을 어떻게 유지하며 집안을 결속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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