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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384
이칭/별칭 「장절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7년 8월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 전래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 『금남면향토지』 수록
성격 사찰설화
주요 등장 인물 승려|빈대
모티프 유형 절터의 빈대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장절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987년 8월 금남면 장재리에서 사재동이 수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

장재리 집골을 올라가면 부처샘을 에워싸고 펀펀한 절터가 있다. 이 절은 창건 당시에는 번창하였으나 노 승려가 열반(涅槃)하고, 젊은 승려들의 부적절한 운영으로 신도들에게 신임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절 안팎에 빈대들이 꼬여서 신도와 승려들을 물어뜯었다. 승속(僧俗)[승려와 일반 속인] 간에 판단하기를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늘이나 부처가 내리신 벌이라고 믿고 절을 불태웠다. 그러나 절을 태워도 살아남은 빈대들은 산으로 가기도 하였지만 주류는 떼를 지어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이때 일본으로 간 빈대는 원수를 갚겠다며 왜인으로 환생하여 줄곧 우리를 괴롭혀 왔고, 산에 있는 빈대들은 어렵게 대를 이어서 지금도 장재리 절터의 돌을 떠들어 보면 빈대가 나온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장절터」의 주요 모티프는 ‘절터의 빈대’이다. 이야기는 한때 번창하던 큰 절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우리 삶의 교훈을 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 설화에는 불교가 토착화되어 지명이 사찰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장재리가 ‘장절’로 불리는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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