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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첫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445
한자 世宗市-
영어공식명칭 Sejong City's First Village
이칭/별칭 한솔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2년 9월 - 행정수도 이전계획 구체화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04월 14일 - 대통령 산하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및 지원단 발족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12월 29일 -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국회 통과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10월 21일 -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5년 03월 02일 -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건설을 위한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12월 - 「세종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공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 ‘송원리, 나성리’를 포함하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첫 마을 출장소’ 개소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개설]

2004년 10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축소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2005년 3월 2일 국회를 통과한 이후 첫 마을 조성 사업이 세종특별자치시 개발의 시초를 열게 되었다. 2007년 12월 행정 부처 이전에 대한 반대와 같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도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세종특별자치시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첫 마을이 되었다. 따라서 첫 마을 한솔동은 국가의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건설되는 세종특별자치시에 처음 건설된 주거지역으로서 세종특별자치시 개발의 초석이 되었다.

[행정수도 이전계획의 추진]

세종시 첫 마을은 행정수도 이전 과정에서 최초로 조성된 주거단지이다. 첫 마을의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과정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은 1977년 2월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거의 2년 8개월 동안 청와대 경제수석 아래 ‘중화학공업추진기획단’이란 이름으로 실무작업단이 구성되어 진행된 신수도 건설 계획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2002년 9월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구체화되었다. 2003년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제정하였으나 이후 헌법소원을 통한 위헌 결정과 수정안을 통한 진행 등의 과정을 거쳐 행정수도 이전계획이 추진되었다. 2003년 4월 14일 대통령 산하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및 지원단이 발족한 이후 국회에서는 2003년 12월 29일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찬성 167, 반대 13, 기권 14표]시켰다.

2004년 7월까지 도시 기본 구상과 입지 선정 기준 마련,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 주요 국가기관 이전계획 및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법에 따라 8월 11일 정부[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최종 입지[충청남도 연기·공주 지역] 확정 등을 마쳤다. 또한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한 기본 개념 설계[2004], 개발계획 수립 및 토지 매수[2005~2007], 도시 건설 및 청사 건축[2007~2011] 단계를 거쳐 2012년까지 행정기관 이전 및 주민 입주 완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였다.

[행정수도 진행 과정과 진통]

그러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으로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받았다. 위헌 결정 이유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불문헌법이며, 수도 이전은 헌법개정 사안인데 국회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를 두고 정치권과 학계는 물론 국민 사이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위헌 결정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의 활동도 전면 중단되었다. 결국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서야 대통령 직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추진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당시 ‘12부 4처 2청’의 행정기관 이전을 통하여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 등을 위한 자족형 친환경, 인간중심, 문화정보 도시의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2006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설립되었고 ‘세종시’로 명칭을 확정하였다. 2010년 12월 ‘세종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고 그에 따라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였다.

[세종시 개발의 첫발 ‘첫 마을’]

신행정수도 입지로 연기·공주 지역이 확정된 이유는 첫째 대전·청주에서 가깝고, 둘째 금강(錦江)미호천(美湖川)이 합류하며, 셋째 ‘국가균형발전 효과’, ‘국내외 접근성’,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 조건’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훨씬 우수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조건은 다양한 역사성에도 기반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첫 마을 입지 환경도 이와 같은 조건에 매우 적합하였다.

첫 마을이 위치한 송원리 일대는 금강 북안의 충적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넓은 ‘나성뜰’과 주변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 마을의 중앙에는 해발 50~70m의 저평한 구릉성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능선의 상부가 평탄하고 사면부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구릉의 남쪽으로는 금강이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흐르고, 남서쪽에는 대교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지형상 남쪽의 금강, 북쪽의 산지, 동쪽의 평야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 환경에 매우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에 해당한다.

첫 마을은 옛 행정구역상 연기군 남면 송원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세종특별자치시 개발이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공주시와 연기군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2011년 ‘송원리, 나성리’를 포함하는 남면 ‘첫 마을 출장소’ 개소 이후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른다. 세종시의 첫 마을 개발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첫 시작을 여는 중요한 사업으로 그 의미가 크다.

[첫 마을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첫 마을]

세종특별자치시는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는 지속 가능한 모범도시를 조성한다는 목적에 기초하여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도시 개발을 진행하기에 앞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구체적으로 고증하기 위한 전반적인 조사·연구를 진행하였다. 따라서 한국토지공사가 시행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 지역 전체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는 2005년 9월부터 2006년 6월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를 기초로 세종특별자치시 일원에서는 개발에 앞서 대대적인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2005년 3월 2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첫 마을의 실시설계가 어렵게 완료되면서 세종시의 첫 마을 예정 부지에 대한 개발의 첫발은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하여 진행되었다. 발굴조사는 송원리 일대의 약 182,013㎡에 대하여 2006년 8월 7일부터 2008년 12월 20일까지 한국고고환경연구소에서 진행하였다. 2007년 12월 행정부처 이전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반대에 직면하였을 때도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첫 마을 개발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첫 마을 예정 부지인 송원리에서 발굴 조사된 송원리 유적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 부지에 대한 조사 중에서는 가장 먼저 이루어진 문화유적 발굴조사라 할 수 있다. 송원리 유적에서 조사된 백제고분군과 더불어 첫 마을 동남쪽의 ‘나성뜰’에서는 백제시대 생활유적인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나성리토성 등도 발굴되었다. 첫 마을 일대에서 조사된 백제시대 유적의 경우 백제가 서울[漢城]에서 공주[熊津]로 천도하면서 주변에 조성한 대단위 생활유적이다. 1,500년 전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할 때 세종 지역에 형성한 ‘백제시대의 첫 마을’인 셈이다.

[세종에서 가장 자랑스런 지명, ‘첫 마을’]

세종특별자치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명칭 전용 도시’로서 2011년 법정동, 마을명, 도로명, 학교명, 공원, 교량 등 1,000여 곳을 한글 이름으로 지정하였다. 생활권별 공동주택의 명칭도 기존에 있던 지역의 고유 전래 명칭을 고려하여 새뜸마을, 가온마을, 나릿재마을과 같은 명칭을 부여하였다.

세종시의 첫 마을은 금강 북안에 위치하는 가운데 첫 마을이라는 지명도 2012년 7월 1일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첫 역사를 여는 단지를 의미하는 뜻에서 ‘첫 마을(First prime)’이라 이름 지어졌다. 행정구역상 한솔동으로 분류되어 관할 지역은 큰 소나무를 칭하는 한솔과 강의 옛 이름인 가람의 2개 법정동이 있다. 한솔동도 큰 소나무와 같이 곧고 푸른 도시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첫 마을 건설은 세종특별자치시의 기능과 특징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공모설계를 통하여 추진하였다. 금강과 주변의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생태 및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바람개비’ 형태의 원형지방식으로 개발한 친환경단지를 조성하였으며, 획일적인 주거지 조성이 아닌 다양한 연령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주택형과 복층형 설계 등을 통하여 첫 마을의 차별화된 건축문화를 조성하였다.

문화와 생태가 어우러지는 개발이라는 큰 전제 아래에서 계획적으로 진행된 세종특별자치시의 가장 자랑스러운 지명인 첫 마을은 금강변의 수변공원과 문화공원, 한솔동 백제고분역사공원 등 산과 녹지가 발달되어 있는 그린네트워크를 통하여 친환경 녹색도시(Eco-Friendly Green City)를 지향하여 조성되었다.

따라서 첫 마을은 행정기능 중심과 다양한 문화, 예술, 지식, 정보산업 등 기능이 조화된 복합자족도시로서 첨단 스마트시티를 지향하는 세종특별자치시의 품격을 높이는 문화정체성과 국제적 교류의 장으로서 정체성(Town Identity)을 갖추고 있다. 문화교류기능(Cross-Cultural City)을 특화한 송원권역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첫 마을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있는 활기찬 도시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세종시의 초석’이 된 첫 마을]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과정에서 다양한 논란이 있었지만 첫 마을은 세종특별자치시 개발에서 정부세종청사 주변의 주요 거주지를 첫 번째로 조성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금강을 비롯하여 전월산·비학산·괴화산, 장남평야 등 자연산천과 생태환경, 녹지경관에 대한 고려와 함께 지역의 역사문화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여 종합적인 도시정체성을 반영한 도시 개발이 진행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신행정수도 추진과 신행정수도특별법 제정, 도시 계획에서 공모를 통한 혁신적 설계, 행정청사 착공과 더불어 행정수도 첫 번째 주거단지인 첫 마을 조성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도시 개발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세종시 첫 마을 부지의 송원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2006~2008년 3년에 걸쳐 이루어진 이후 2009년 3월 30일 첫 마을 아파트를 착공하여 2011년 12월 26일 첫 마을 1단계 아파트가 처음 입주하였으며, 이후 2012년 6월 29일 첫 마을 2단계 아파트가 입주하였다.

첫 마을은 금강제천 변의 생태도시 이미지를 갖춘 한솔동의 녹지공간 확충과 함께 오랜 역사에 기반을 둔 세종시 첫 마을의 문화 전통을 증거하는 중요한 역사적 공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더불어 세종시의 첫 마을은 고고학적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1,500년 전 백제시대부터 ‘첫 마을’이 조성된 곳으로 확인되는 가운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과정에서도 첫 마을로 개발되어 세종특별자치시의 초석이 된 상징적인 ‘역사와 문화’를 갖춘 지역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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