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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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鬪具峰 |
영어음역 | Tugubong |
영어의미역 | Tugubong Peak |
이칭/별칭 | 「혈지른 투구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화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종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화리에서 투구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살미면 소재지에서 10㎞ 지점에 위치한 문화리에 투구산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가 대장군상을 하고 있자 명장이 출현할 것을 염려하여 산 정상에 다섯 개의 철장을 박아 산혈을 잘랐다고 한다. 지금도 혈을 자르기 위해 철장을 박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으며, 당시 살미면 문화리에 거주하던 주민 김후봉으로부터 채록하였다. 1981년 중원군에서 간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에는 「혈지른 투구봉」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내용]
살미면 문화리에 있는 457m 산이 투구봉이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원군을 이끌고 조선에 나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다가 주변의 산세를 보니 산의 형국이 대장군의 상인데다 명산의 정기를 받아 절세명장이 출현할 것이 분명했다. 이여송은 서둘러 철장 5개와 숯 100포를 산봉우리로 옮겨 산정에 혈을 질렀다. 그러자 별안간 산이 울리면서 암석초목이 떨며 땀과 같은 물방울이 흘러 맺혔다. 그 후로 이 산을 ‘장수산’이라고 불렀고, 산의 모양이 투구를 쓰고 앉은 장군을 연상케 하므로 ‘투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산정에 올라가 보면 철장을 박았던 자리에 네 개의 작은 구멍과 동굴이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투구봉」의 주요 모티프는 ‘혈이 잘린 명산’으로, 투구봉에 혈을 지른 내력이다. 풍수전설로 명산의 혈을 질러 인재의 출현을 막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전설은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증거물로 쇠말뚝이 박혀 있는 바위가 많다. 투구봉 이외에도 이여송이 충주시 소태면 청계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아 명산의 정기를 끊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바위에 쇠말뚝을 박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여송이 한국인의 풍수신앙을 이용하여 조선의 인재 출현을 저지하고 있는 전설이 많은데, 김천시의 「서낭골 정기 전설」은 이여송이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다가 장군이 날 것이 두려워 산맥을 끊었다는 이야기이다. 봉화군 풍정마을의 「이여송이 깬 바위 전설」도 이여송이 이 마을에서 큰 장수가 날 것을 두려워하여 바위의 혈을 잘랐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일본인들에 의한 피해보다 이여송에 의한 피해가 더 컸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