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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그랬어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A020205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구

1930년생이신 김도진 씨. 미륵리에서 태어나 미륵리에서 늙어 가시는 분이다. 김도진 씨는 요즘 사람들의 나물먹는 행태나 나물을 뜯어 판다는 개념을 이해 못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라고 했을 때의 ‘예전’이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대뜸 구분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1960년대 이전으로 파악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훨씬 그 이전이나 혹 그 이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이지만 굳이 명확하게 구분 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무슨 큰 문제가 되랴 … 어려서부터 해 온 나물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내가 뭐 말재주가 있어야지?” 하신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몸을 피하신다. 그래도 이 얘기 저 얘기 하신다.

먼저 나물은 맛으로 먹은 것이 아니라 식량이 부족할 때 끼니용으로 먹었다고 운을 떼신다. 요즘처럼 생으로 먹는 것은 보기 힘들고 거의 삶아서 먹었다고 했다. “그 땐 고기를 거의 먹지 못해서….” 라는 이유를 어설프게 대신다.

봄철이 되면 식량이 귀해서 사람들의 얼굴이 부석부석해졌단다. 나물을 해서 파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우선이었단다. 팔지도 몰랐단다.

해동이 되면 쑥을 캐다 식량 대용으로 콩가루 묻혀서 먹고 취나물도 저녁에 식량으로 먹고 말려서 묵나물로 보관했다가 먹고 … 다래순이고 뭐고 말려 두었다가 먹었단다. 취는 ‘싸르리한 맛’이 있는데 요즘 생으로 쌈도 싸먹고 하지만 예전에는 전부 삶아서 울궜다가 먹었단다. 곰취는 묵나물로만 먹었지 생으로는 전혀 안했는데 … 요즘처럼 쌈 싸먹는 것은 전연 보지도 못했었다고 하면서 도저히 이해 못하는 모습이다. 홈취도 묵나물로만 해먹고, 홑잎은 그냥 해먹었단다. 아주까리 잎은 묵나물로 해서 정월에 먹었단다. 더덕은 숱했다고 한다. 이 지역 더덕은 산이 깊기 때문에 더덕이 연하고 맛이 좋고 굵으며 향이 진했단다. 더덕만 캐서 먹고 사는 집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치 흔하게 널렸었다고 한다.

하절기 보리고개 때는 덜 여문 보리를 베다가 솥에 볶아 먹기도 하였고 보리를 지나치게 ‘떨면’ 식량이 부족하니까 감자를 주로 많이 먹었단다. 7월엔 도라지를 캐다 팔기도 했단다. 여름철 나물은 쇠서 거의 먹을 것이 없단다고 한다.

백로 절기를 전후해서 송이버섯이 나기 시작하는데 여기 미륵리에서는 사방 산에서 버섯이 다 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단다. 겨우 충주에 나가서 헐값에 팔고 오는 사람이 있는 정도라 하였다. 그렇게 흔하던 것이 요즘엔 아주 귀하다고 한다.

월악산에서만 난다는 고본은 한약이란다. 요즘 술 담가 먹느라 막 캐가서 귀하지 예전에는 많았단다. 약초는 고본뿐만 아니라 당귀, 백복령, 둥글레 등이 많았는데 대신 칡은 별로 없었단다. 산세가 험해서인지 칡이 큰 것이 없고 보릿고개 때 간혹 캐먹기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고 하였다.

나물 중 최고는 역시 취나물이라 하신다. 왜냐하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까….

[정보제공]

  • •  김도진(남, 78세, 미륵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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