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A03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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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구 |
1977년 법주사에서 세계사를 복원해야 한다고 부탁을 받고 도반과 함께 당시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세계사로 와서 겨울 한철을 지내면서 100일 기도를 끝냈을 때, 기부금 78,000원 정도 확보되었지만 이것으로는 도저히 복원이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떠나기로 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버스가 들어오질 않아서 버스를 타려면 30리를 걸어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복원한다는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봄에 짐을 싸서 마루 끝에 놓은 후 같이 있던 도반은 아침 공양 후 먼저 길을 떠났고 성관스님은 여기 와서 뒷산도 못가 보았으니 돌아 본 후 떠나도 늦지 않을 것이다 라 생각하고 혼자 뒷산에 오르니 산세가 훌륭하고 미륵사가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것을 단박 알겠더라.
성관 스님은 산을 내려오면서 떠날 것이 아니라 여기다 바르게 절집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1978년 삼월 삼짓날 천일기도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1981년에 천일기도를 마치고 나서, 꿈에 미륵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미륵리 골짜기에서, 맑은 하늘에 미륵리 전체가 ‘움즉거리는’ 거대한 음성이 들렸다. “앞으로 절을 지으려면 여기다 지어라” 스님은 꿈에서도 꿈이라고 생각 안하고 지적한 골짜기를 올라가니 다시 “저 앞산을 바라 봐라” 문득 바라보니 “얼마나 경치가 좋으냐” 정말 꿈속에서도 경치가 좋았다고 한다. 월악산이 조견봉으로 보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앞으로 여기다 절을 짓고 공부해라” 그 소리에 깨서 보니 당시 시각이 새벽 2시. 그 즉시 옷을 입고 달빛을 받으며 올라 와 보니 정말 좋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고 절집을 짓고자 하였다고 한다.
일단 절 부지를 사놓고 보니 국립공원 예정지로 국립공원법의 적용을 받아 절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다. 다시 1000일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재 미륵대원 터에 임시로 절을 짓느라 기도를 한 달 정도 소홀히 하였더니 기도가 끝난 뒤에도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다. 재차 1000일 기도를 들어가면서 성관 스님은 신도들에게 장담하기를 기도 끝나기 전에 건축 허가를 받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실제 기도가 끝나기 한 달 전 즈음에 국립공원 자연보호지역에, ‘대통령 빽으로도 안 되는 곳에’ 완벽하게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절집으로 사용하는 터는 약 3000평 정도이고 밭, 임야는 10정보 정도의 규모이다. 1000일 기도의 효험일까? 확고한 의지에 대한 보답일까? 이렇게 미륵리 삼봉 산록 깊은 곳에 대광사는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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