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C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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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호 |
수구란 풍수지리에서 좌청룡, 우백호 사이의 벌어진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 공간을 통해 출입하는 물의 통로를 가리킨다. 수구가 너무 넓거나, 엉성하고 열려 있으면 마을이나 집터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재물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지고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막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구가 벌어져 있을 경우 인공으로 이를 막아 ‘수구막이’를 설치하여 비보(裨補)하는 것이 조선시대 마을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즉 나무를 심거나, 돌로 된 장승을 설치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제내리에도 오랜 세월동안 지켜주던 천연의 수구막인 숲이 천수를 다하여 말라죽어 없어지게 되었다한다. 그런데 이 때문인지 1백여 년간 마을이 쇠퇴하고, 인재의 변고가 자주 일어나며, 심지어 살림살이의 파산으로 마을을 떠나는 호구도 많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동리는 쓸쓸하고 빈집이 늘어나며, 생활도 곤궁해지면서 지난날의 풍요는 사라지고 가난한 농촌으로 변모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수구가 막히면 부촌이 되고 허하면 가난해진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수구막이 숲을 조성하여 다시 살기 좋은 마을로 가꾸어 보자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즉 마을의 수구가 허전해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풍덕마을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어 수구막이를 조성하는 비보(裨補)를 시행해 보자는 합의를 이룬 것이다. 이때가 1906년 7월의 일이다. 당시 이석호(李錫浩) 등이 주동이 되어 겉보리 한 말씩을 거두며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나섰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기금이 마련되자 이 기금으로 마을 입구의 땅을 사고 이듬해 봄에 나무를 심어 다시 숲을 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후 숲이 자라면서 점차 마을의 평안도 다시 찾아들게 되고, 풍요로운 마을로 바뀜에 따라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구막이 숲을 이용한 비보의 효과는 외부의 관찰자는 느낄 수 없고 오직 내부의 거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정감, 즉 장소 안에 있다(insider)는 안정감을 마련해 준다고 한다. 풍덕마을의 방풍림에서도 풍덕마을이라는 장소가 ‘외부’와 대조적인 ‘내부’라는 현실적인 체험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안정감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풍덕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있다가 마을에 돌아오면서 바라다 보이는 방풍림이 ‘아! 저기가 우리 고향’이라는 설레이는 반가움과 충만감을 만끽하게 해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