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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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扶安林氏旌閭 |
이칭/별칭 | 효부 유언하 처 부안임씨 정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1215-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순영 |
건립 시기/일시 | 19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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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3년 - 열녀 부안임씨 정려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05월 31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문화재 해지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현 소재지 | 열녀 부안임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1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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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열녀 부안임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1215-2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에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기계유씨 문중 |
관리자 | 기계유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6호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유언하의 처 부안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유언하(兪彦夏)[1749~1819] 처 부안임씨(扶安林氏)의 시어머니에 대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부안임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임두칠(林斗七)의 손녀이자 임시윤(林時潤)의 딸로, 옛 연기군 남면에서 태어나 19살에 유언하에게 출가하였다.
부안임씨는 육순(六旬)에 이른 시어머니 성주배씨가 3년간이나 학질로 고생하자 온갖 정성으로 봉양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시어머니가 말년에 9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뒷산의 높은 봉우리에 제단을 쌓고 한결같이 기도하는 효행을 실천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부안임씨가 기도하던 봉우리를 ‘임씨기도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호서읍지』와 『연기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묘소는 연서면 국촌리에 있다.
남편 유언하는 기계유씨이다. 유언하의 아버지는 유성중(兪聖重)[1716~1790]이고, 어머니는 참판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된 배우당(裵佑唐)의 딸이다.
그런데 유언하의 어머니 성주배씨는 1891년 효자로 명정을 받은 성이복(成爾復)의 양모 자매로, 당시 복잡한 혼인관계로 연결되어 있던 향촌사회의 일면을 보여 준다.
연서면 와촌리 은암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 있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1887년에 명정을 받았으나 경제 사정 등으로 건립되지 못하다가 5세손 유진철(兪鎭喆)의 주도로 1924년에야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983년에 연기군의 보조를 받아 개·보수를 하였고, 이후 몇 차례 더 개·보수를 하여 보호시설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정면·측면 모두 1칸이며,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취하고 있다. 바닥은 흙바닥이고, 화강석재를 가공한 원형초석 위에 원주를 올렸다. 4면은 모두 홍살로 처리하였으며, 초익공에 양 측면의 박공 밑에는 방풍판 시설을 하였다.
열녀 부안임씨 정려의 내부에는 명정현판과 정려기가 있다. 가로 80㎝, 세로 44㎝ 크기의 명정현판에는 ‘효부 유언하의 처 부안임씨의 정려[孝婦 學生杞溪兪彦夏妻 扶安林氏之閭]’라는 내용과 작은 글씨로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았음[光緖十三年 聖上卽祚二十四年 丁亥閏四月初三日 命旌]을 기록하였다.
명정현판의 왼쪽으로 이어서 게재된 가로 103㎝, 세로 46㎝ 크기의 정려기는 후손 유진철의 부탁으로 김영한(金寗漢)이 1924년에 지은 것을 파손으로 인하여 최근에 다시 각서한 것이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부안임씨 남편 유언하의 어머니 성주배씨가 같은 동네에서 1891년에 효자로 명정을 받은 성이복의 양모 자매라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옛 연기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인 기계유씨, 창녕성씨, 부안임씨 등의 관계 속에 정려 건립 활동이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