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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254
영어공식명칭 Ferry
이칭/별칭 나루터,도선장,진하(津河)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창숙

[정의]

세종 지역의 금강이나 미호천 등에서 배가 건너다니던 곳.

[개설]

내륙수로 교통 기능을 담당하였던 나루와 나루터는 비교적 수심이 얕고 물의 흐름이 빠르지 않은 연안에 있었다. 나룻배는 이웃 마을을 연결해주는 중요 교통수단이었다. 금강미호천 연안의 나루는 뱃길과 육로[조선시대의 역로]교통이 교차하는 요충지였다. 세종특별자치시 남쪽을 동서로 흘러 서해로 유입하는 금강은 조선시대 한강, 낙동강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강으로 불리는 큰 수로였다. 우리나라 주요 내륙수로였던 금강 하구에는 한때 조선 3대 시장의 하나였던 강경포구가 있었다. 금강 하류의 강경과 이어지는 최상류의 수운 종점인 부강포구는 군산, 강경, 부여, 공주와 함께 금강 5대 포구로 중요 기능을 담당하였다. 금강 유역에는 5대 포구와 함께 하천 양쪽 지역의 마을을 이어 주던 교통로인 크고 작은 나루가 많이 있었다.

[세종 지역의 나루]

우리나라의 주요 내륙수로였던 금강과 국가하천 미호천이 흐르는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예로부터 나루가 많았다. 나루는 사람과 물자를 수송하는 내륙수로 교통 기능을 담당하였다. 특히 금강을 경계로 한 금남면부강면, 연기면, 금남면을 잇던 곳과 미호천을 경계로 한 연기면연동면에 나루가 많았다. 금강변의 마을을 잇던 나루로는 상류의 부강나루부용나루, 앵청이나루, 대평리나루, 나성나루, 한림정나루, 공주시 경계지역의 불티나루 등이 있었다. 미호천변의 마을을 잇던 나루로는 동진나루, 꽃벼루나루 등이 있었다.

[현황]

1905년 경부선철도가 건설되면서 금강미호천의 나루들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 도로교통이 발달하고 금강미호천에 근대식 교량이 건설되었다. 1981년 금강 본류를 가로지르는 대청댐의 건설로 금강의 수량이 줄어들면서 나루터와 나룻배가 사라졌다. 2005년부터 이른바 ‘행복도시’라 불리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되고 2013년 이후 4대강 사업으로 금강 준설 공사와 공주보, 세종보 등의 설치가 이루어지면서 남아 있던 나루터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나루가 있던 곳에 대부분 교량이 건설되었고 그 자취는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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