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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31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공식명칭 Bronz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현숙

[정의]

세종 지역에서 청동으로 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청동기시대는 석기시대 이후 청동(靑銅)으로 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철제 도구를 사용하기 이전까지의 시기이다. 청동기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동검을 기준으로 중국 동북 요령 지역까지 청동기문화권에 포함된다. 청동기시대의 문화 내용은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가 등장하고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무덤이 정형화되어 무리를 형성하고 청동기가 사용되는 등 사회복합도 증가로 정의된다. 청동기시대 이전의 신석기시대와는 여러 면에서 단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민무늬토기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청동기시대의 상한은 덧띠새김무늬토기[각목돌대문토기(刻目突帶文土器)]를 기준으로 기원전 15세기까지 상향 조정되고 있으며, 하한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 생활문화]

청동기시대 유적은 주로 강가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입지하는 특성을 보이다. 주로 여러 기의 주거지가 모여서 취락을 이루고 있다. 무덤으로는 고인돌[지석묘(支石墓)],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 등이 있다. 주거지 이외에 수혈유구, 목책열, 구상유구가 조사되었다. 구릉 주변의 저지대에서는 논농사와 밭농사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경작지가 조사되기도 한다. 밭은 이랑과 고랑이 뚜렷하고, 논은 규모가 작지만 저수 시설과 물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주로 볍씨와 조, 수수, 기장, 보리 등 곡물이 확인된다. 청동기시대 유물은 다양한 기형의 민무늬토기가 있으며, 석기로는 화살촉·돌도끼·돌칼·돌낫·돌끌·숫돌 등 주로 생활용구가 발견되었다. 청동유물로는 동검(銅劍)과 같은 청동 무기와 공구 등이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세종특별자치시 남쪽 ‘금강’변의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조사된 유적이 있다.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 북동쪽의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조성사업부지인 ‘조천’과 ‘미호천’변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정중리 및 봉산리에서 대단위 청동기시대 취락이 조사되었다.

집터는 강 언저리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구릉지대나 자연제방 정상부 등지에 집중되어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개발 부지 내에서는 송원리 유적과 송담리 유적을 시작으로 금남면의 석삼리와 장재리 유적, 연동면의 용호리 유적에서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확인된다. 내부 시설로는 무시설식(無施設式)[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형태]과 위석식(圍石式)[주변을 돌로 두른 형태] 노지, 저장구덩이, 벽구, 주공 등이 확인된다. 주로 위석식노지가 확인되는 가락동식 주거지와 무시설식노지가 확인되는 역삼동식 주거문화가 복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기로 편년되는 덧띠무늬토기[돌대문토기(突帶文土器)]가 겹아가리토기[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와 공반하는 모습이다. 덧띠무늬토기가 출토된 주거지는 장방형과 방형 평면 내부에 석상위석식노지가 확인된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금강 중류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변천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북동쪽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서 조사된 유적과도 비교할 수 있다. 특히 금강 중류역에 출현한 청동기시대 조기의 돌대문토기문화 유형과 가락동, 역삼동·흔암리유형으로 대표되는 전기문화의 공반 과정이 3-1생활권의 대평리유적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4-2생활권의 집현리 일대와 5-1 3생활권의 합강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송국리형 주거문화가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생활문화 변천상을 살필 수 있다.

이밖에 송담리 유적과 금남면 대평리 유적에서 수혈유구가 확인되었고, 보통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함정유구가 조사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청동기시대 무덤]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는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을 비롯하여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움무덤[토광묘(土壙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 등이 있다. 고인돌은 커다란 돌을 가지고 만든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강을 낀 평지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하고 있다. 만든 형태에 따라서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나뉜다. 돌널무덤은 넙적하고 판판한 돌을 짜서 만든 것으로, 대부분 풍화암반층을 파고 축조하였다. 움무덤과 독무덤은 청동기시대 후기에 주로 만들어진 무덤이며, 다음 시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조사된 분묘유적은 고인돌, 돌널무덤, 돌덧널무덤이 있다. 고인돌은 송원리 유적, 월산리 황골유적, 4-1지점 2생활권 금남면 집현리 일원에서 돌덧널무덤과 함께 조사되었다. 돌널무덤은 연동면 용호리유적과 5-1지점 3생활권 합강리 유적에서 조사되었으며, 움무덤은 장재리 유적에서 조사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청동기시대 유물]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토기, 석기, 청동기 등이 있다. 민무늬토기는 음식을 끓이고 저장하며 담는 기능을 한다. 기형에 따라서 항아리, 발, 완 등으로 다양하다. 문화적 특징에 따라서 청동기시대 조기의 덧띠무늬토기와 가락동유형의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역삼동·흔암리유형의 구멍무늬토기[공열문토기(孔列文土器)], 붉은간토기[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이 다양하게 확인된다. 석기(石器)는 용도에 따라 농공구와 무기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농공구로는 돌괭이·돌낫·반달돌칼과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데 쓴 돌도끼·돌자귀·돌끌·돌대팻날 등이 있다. 그리고 무기류로 간돌검과 돌화살촉 등이 있다. 이밖에 먹거리 가공과 관련된 갈판과 갈돌, 석기를 다듬는 데 필요한 숫돌, 가락바퀴 등 다양한 석기가 확인된다.

청동기(靑銅器)는 대부분 청동기시대 후기나 초기 철기시대 유구에서 출토된다. 주로 고인돌과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동검, 동부, 화살촉 등이 있다. 동검은 이른 시기의 비파형동검과 이를 조형(祖型)으로 한 한국식동검[세형동검]이 있다. 또한 한국 청동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거친무늬거울[조문경(粗紋鏡)]과 잔무늬거울[세문경(細紋鏡)]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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