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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53
한자 洪稙
영어공식명칭 Hong Jik
이칭/별칭 치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0년(선조 3)연표보기 - 홍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2년(선조 35) - 홍직 별시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2년(광해군 4) - 홍직 해남현감
활동 시기/일시 1624년(인조 2) - 홍직 삼등현령
활동 시기/일시 1627년(인조 5) - 홍직 순안현령
활동 시기/일시 1636년(인조 14) - 홍직 문화현령
몰년 시기/일시 1637년(인조 15)연표보기 - 홍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13년(숙종 39) - 홍직 병조참의 증직
추모 시기/일시 1713년(숙종 39) - 홍직 명정 받음
추모 시기/일시 1908년 - 홍직 정려 건립
묘소|단소 홍직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충신 홍직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 산 85-2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남양
대표 관직 통정대부

[정의]

조선 후기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적이 있는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개설]

홍직(洪稙)[1571~1637]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경(稚卿)이다. 무예에 출중하여 1602년(선조 35)에 별시 갑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로 이름난 인물이다.

홍직이괄의 난을 진압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적을 사로잡는 공(功)을 세웠으며, 병자호란 때인 1637년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가계]

홍직은 전의 지역 남양홍씨 입향조 홍익청(洪翼淸)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전의 지역에 세거하고 있던 거창신씨 신몽상(愼夢祥)의 딸이다.

거창신씨와 혼인하여 남양에서 전의로 옮겨 오게 되었다고 한다.

[활동 사항]

홍직은 무예에 출중하여 1602년(선조 35)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7개 고을의 현감을 지냈으며, 청백리로도 명성이 높았다.

특히 1612년(광해군 4) 해남현감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홍직의 미덕을 칭송하여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록이 『광해군일기』 59권 11월 13일 계묘조 기사에 남아 있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남현감(海南縣監) 홍직(洪稙)은 청렴하고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운 데다 정사는 공평하고 송사는 잘 다스렸으므로 관사를 지을 때 백성과 승도(僧徒)들이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와 앞을 다투어 역사를 하였습니다. 관아를 떠나는 날에는 행장(行裝)을 간단히 하여 한 가지의 물건도 취해가지 않았으니, 사경(四境)의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합니다. 이 세 사람은 치적이 밖으로 드러난 듯하니 상전을 베푸는 일을 상께서 결정하여 시행토록 하소서.”

이처럼 홍직은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워 미덕을 칭송할 정도로 청렴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삼등현령으로 재직한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장만(張晩)을 도와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적을 세웠으며, 순안현령으로 재직 중이던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발생하자 관군을 이끌고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때 다수의 포로를 잡는 등 전과를 올렸다.

또한 문화현령으로 재직 중이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생하여 황해북도 정방산성(正方山城)에서 적군의 남하를 막는 임무를 수행하였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하였다.

[묘소]

홍직은 병자호란에 출정하여 적과 싸우다 13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전의현에 돌아와 장사 지냈으며, 묘는 전의 비암동(碑庵洞)[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홍직의 사후 80년이 된 1713년(숙종 39)에 숙종이 홍직의 충절을 치하하는 글을 내리고 병조참의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하였다. 이때 충신의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 내서마을에 1908년에 세운 충신 홍직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있으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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