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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71
한자 鄭元龍
영어공식명칭 Jeong Wonry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의당전의로 687[영당리 102-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2년(순조 12)연표보기 - 정원룡 출생
추모 시기/일시 1904년 - 동몽교관으로 증직되어 명정을 받음
추모 시기/일시 1904년 - 아들 정대권과 함께 정려를 받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4년 - 정원룡의 처 파평윤씨가 열녀 명정을 받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4년 - 정원룡의 손자 며느리 한산이씨가 열녀 명정을 받음
묘소|단소 진주정씨 사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의당전의로 687[영당리102-4]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진주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정원룡(鄭元龍)[1812~?]의 본관은 진주이며, 충장공 정분(鄭苯)의 14세손이다. 부인은 윤제규(尹濟奎)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1811~?]이며, 아들은 정대권(鄭大權)[1850~1902]이다.

[활동 사항]

정원룡의 부친은 외출하면 항상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사는 곳이 산골인 까닭에 아버지께서 귀가할 때가 되면 정원룡이 마중을 나갔다. 어느 날 마중을 나갔는데 큰 호랑이가 나타나 아버지 앞을 가로막았다. 정원룡은 급히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 호랑이에게 “사람이 아버지를 중히 여기는 도리와 호랑이가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비와 자식 간의 정이다. 사람이나 호랑이나 이와 같은 이치인데 너는 어찌하여 우리 아버지를 해하려 하느냐”고 훈계하였다. 정원룡의 훈계를 들은 호랑이는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흔들었는데 마치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고 하며, 정원룡 부자가 집 대문에 다다를 때까지 호랑이가 따라갔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903년 전의 유생 이상옥 등이 소를 올려 1904년(고종 41) 1월에 동몽교관으로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어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1904년 아들 정대권과 함께 부자(父子)가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받았다. 이와 함께 정원룡의 부인 파평윤씨도 시부모와 남편을 잘 섬겨 열녀 명정을 받았으며, 열녀 한산이씨는 정원룡의 손자 며느리인데 남편 정헌세가 죽자 따라 죽어 1904년 4월 열녀 명정을 받았다.

한 집안에서 4명의 효자 및 열녀가 명정을 받았으며, 이를 기리기 위한 진주정씨 사효 정려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있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당초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방리 음담말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현재 자리로 이전하면서 규모가 작아졌다고 한다.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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