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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29
한자 晉州鄭氏四孝旌閭
이칭/별칭 진주정씨 사쌍효열문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의당전의로 687[영당리 102-4]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30년대 - 진주정씨 사효 정려 전의면 신방리에서 현재 위치로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9년 - 진주정씨 사효 정려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6년 - 진주정씨 사효 정려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7년 - 진주정씨 사효 정려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05월 31일연표보기 - 진주정씨 사효 정려 연기군 향토유적 제1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진주정씨 사효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진주정씨 사효 정려 연기군 향토유적 제18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진주정씨 사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의당전의로 687[영당리 102-4]지도보기
원소재지 진주정씨 사효 정려 -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방리 음달말
성격 정려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진주정씨 문중
관리자 진주정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있는 진주정씨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개설]

진주정씨 사효 정려진주정씨(晉州鄭氏) 정원룡(鄭元龍)[1812~?]과 정원룡의 아들 정대권(鄭大權)[1850~1902], 정원룡의 처인 효부 파평윤씨(坡平尹氏)[1811~?], 정원룡의 손부인 열녀 한산이씨(韓山李氏)까지 모두 네 사람의 효열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정원룡은 정분(鄭苯)의 14대손이다. 평소 부친을 극진히 섬겼는데, 이 사실이 알려져 1903년 전의 지역 유생 이상옥 등이 소를 올려 1904년 1월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되고 명정을 받았다. 정원룡의 효행이 얼마나 극진한지에 대한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부친이 외출 후 늦은 시간에 산길로 돌아오게 되어 정원룡이 마중을 나갔다고 한다. 그때 커다란 범이 나타났는데 정원룡이 급히 부친 앞으로 달려가 범을 훈계하자 범이 머리를 조아리고 집까지 따라오며 보호하여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정대권정원룡의 아들로, 부친과 함께 1904년 1월에 명정을 받아 정려가 세워지고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되었다. 이 사실이 『연기지』(1934)와 현판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정대권은 9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고,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추운 겨울에 두꺼비를 잡아 병을 고쳤다고 한다. 정대권은 1899년(고종 36) 참봉을 지냈고, 1902년(고종 39) 중추원 의관이 되었다.

파평윤씨는 윤제규(尹濟奎)의 딸로, 정원룡의 부인으로 출가한 후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남편과 시부모를 잘 섬기었다. 시부모의 병환에 백약이 무효여서 밤마다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었다. 마침 훌륭한 의원이 지나가다 이 말을 듣고 약을 써서 효력을 보아 시부모가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파평윤씨는 1893년(고종 30)에 정려를 받았다. 한산이씨는 이승도(李承道)의 딸로, 정원룡의 손자며느리이자 중추원 의관을 지낸 정헌세의 부인이다. 남편이 사망하자 남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난 열녀로, 1904년에 명정을 받았다.

[위치]

전의면 소재지에서 691번 지방도로를 따라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쪽으로 약 3㎞ 가면 도로 서쪽으로 영당리 당마루 마을이 나온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당마루 마을 앞 691번 지방도로의 서쪽 편에 인접하여 있다.

[변천]

파평윤씨는 1893년, 정대권정원룡은 1904년 1월, 한산이씨는 같은 해 4월에 각각 명정을 받았다. 원래 진주정씨 사효 정려전의면 신방리 음달말 밭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지금의 전의면 영당리로 옮겨졌으며, 그때 크기가 줄었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1979년에 군비와 문중의 부담으로 중수한 뒤 1996년과 1997년에 군비로 다시 보수했다.

[형태]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양 측면의 박공 밑에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사각초석 위에 방형의 기둥을 올렸으며, 홑처마를 하고 있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의 전면은 홍살을 돌렸고, 각 칸 역시 홍살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후면은 반벽을 시설한 후에 홍살을 돌렸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 오른쪽으로 출입구가 있어 각 칸으로 이동할 수 있다.

[현황]

진주정씨 사효 정려 내부에는 사효열의 명정현판과 1996년 진주정씨 사효 정려 중건 사연을 기록한 ‘鄭元龍四雙孝烈門重修記’가 걸려 있다. 정원룡 명정현판[160×30㎝, 孝子 贈朝奉大夫童蒙敎官 鄭元龍之門 聖上卽位四十一年(1904) 甲辰正月日 命旌]에 이어 파평윤씨 명정현판[160×30㎝, 孝婦 贈朝奉大夫童蒙敎官 鄭元龍之妻 令人 坡平尹氏之門 聖上卽位三十年(1893) 癸已 七月日 命旌], 정대권 명정현판[160×30㎝, 孝子 通政大夫行中樞院議官 贈嘉善大夫內部協辦 鄭大權之門 聖上 卽位四十一年(1904) 甲辰正月日 命旌], 한산이씨 명정현판[160×30㎝, 烈女 學生鄭憲世之妻 孺人韓山李氏之門 聖上卽位四十一年(1904) 甲辰四月日 命旌] 순으로 걸려 있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주정씨 문중에서 선열의 효열 정신을 드높이기 위하여 정려 포장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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