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70
한자 鄭大權
영어공식명칭 Jeong Daeg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0년(철종 1)연표보기 - 정대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9년(광무 3) - 참봉벼슬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02년(광무 6) - 중추원 의관을 지냄
몰년 시기/일시 1902년(광무 6)연표보기 - 정대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04년(광무 8) - 내부협판으로 증직됨
사당|배향지 진주정씨 사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102-4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진주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정대권(鄭大權)[1850~1902]의 본관은 진주이다. 충장공 정분(鄭苯)[?~1454]의 15세손이며, 아버지는 정원룡(鄭元龍)이다. 정대권의 아들 정헌세(鄭憲世)와 정헌채(鄭憲采)는 중추원의관을 지냈고, 정헌빈(鄭憲斌)은 전의 문묘 직원을 지냈다.

[활동 사항]

정대권은 9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상제가 기거하는 초막]을 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으로 묘소에 올라가 슬퍼하며 시묘하였다. 그 후 홀어머니를 잘 봉양하였으나 어머니가 노환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드리기까지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는데 의원으로부터 두꺼비가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한겨울이라 두꺼비를 구할 길이 없어 애통해 하면서 목욕재계하고 산중으로 찾아 나섰다. 어느 날 벼락바위[雷岩]를 본 현몽(現夢)[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에 따라 찾아가니 눈 위에 커다란 두꺼비가 한 마리 있었다. 두꺼비를 잡아다 알약[丸]을 지어 어머니에게 드리니 병이 나았다. 사람들이 모두 정대권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예를 다하여 모셨으며, 기일이 돌아오면 마치 돌아가신 날과 같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899년(고종 36) 참봉벼슬을 받았고, 1902년 중추원 의관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1904년 1월 내부협판으로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어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효자현판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있는 진주정씨 사효 정려에 걸려 있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