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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72
한자 崔澮
영어공식명칭 Choe Hoe
이칭/별칭 경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3년(명종 18)연표보기 - 최회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20년(광해군 12)연표보기 - 최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86년(숙종 12) - 최회 정문 건립
출생지 최회 출생지 -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봉산리
묘소|단소 최회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중뜸마을 봉산영당 뒤편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효자 최회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138-1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강화

[정의]

조선시대 세종 지역 출신 효자.

[가계]

최회(崔澮)[1563~1621]의 자는 경택이다. 할아버지는 강화최씨 연기 입향조 최완(崔浣)[1510~1570]이다. 아버지는 최중룡(崔重龍)[1543~1575], 어머니 강릉김씨는 참봉 김봉조의 딸이다.

[활동 사항]

최회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평소에 말이 적고 남의 잘못을 감싸 주는 자상한 성품 소유자였다. 최회의 나이 13세에 갑자기 부친상을 당하자 어린 나이에도 상복을 벗지 않은 채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최회는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만 아니라 친구 간의 우애도 깊어 시비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홀어머니를 지극히 섬기겠다는 일념으로 효를 행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여 생원시에 합격, 모친을 기쁘게 해 주었다.

최회가 57세 되던 해에 모친이 노환으로 시달리자 몸소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시중을 들었다.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드렸으나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로 모친을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매일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다가 피로가 쌓여서 58세를 마지막으로 모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인 최달원, 최진원, 최도원의 효행도 출중하다. 다섯 아들 중 최조원(崔造源)은 무과 병과에 급제하는 등 가문이 명성을 얻었다. 손자인 최일화, 최유화, 최주화, 최정화의 효행도 출중하다.

[묘소]

최회의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중뜸마을에 있는 봉산영당의 뒤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68년(숙종 12) 명정을 받아 정문을 건립하였다. 효자 최회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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