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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736
한자 洪日燮
영어공식명칭 Hong Ilseo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8년연표보기 - 홍일섭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홍일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홍일섭에게 대통령 표창이 추서됨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홍일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됨
출생지 홍일섭 출생지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신대리 289[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 289-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홍일섭(洪日燮)[1878~1935]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신대리 출신으로 연기군 조치원읍 조치원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홍일섭은 1919년 3월 30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조치원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앞서 연기청년회 간부인 맹의섭(孟義燮)·김재형(金在衡)·전병수(全炳壽)·이은식(李殷植) 등은 고종 국장(國葬) 참례를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서울 3·1운동에 참가하고 귀향하였다. 맹의섭김재형은 연기청년회를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에 3월 23일 조치원읍과 청주 지역에서 전개된 연합 횃불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맹의섭번암리, 김재형은 죽내리, 전병수는 동리, 이은식은 백관리와 월하리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맹의섭·김재형·전병수·이은식 등은 낙향하여 향리에서 국권 회복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기 위하여 신대리에서 사숙(私塾)을 열어 많은 제자를 양성한 홍일섭을 대표로 추대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3월 30일 아침 조치원시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시장을 보러 오는 지역민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부탁하였다.

홍일섭은 오후 2시경 시장 군중들을 향하여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시장 군중들도 합창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연기청년회 회원들도 시장 곳곳을 다니며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부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였다.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조치원 헌병 분견소 헌병과 철도 원호대 수비대원들이 출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군중들을 강제로 진압하였다.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힌 홍일섭은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홍일섭의 공적을 기리어 198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追敍)[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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