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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50
한자 晉州柳氏三孝烈旌閭
이칭/별칭 진주유씨 삼효열 정려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길 120[하봉리 90-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25년(영조 1)연표보기 -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04월 20일연표보기 -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8호 지정
현 소재지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길 120[하봉리 90-3]지도보기
원소재지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 6-2
성격 정려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진주류씨 문중
관리자 진주류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8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에 있는 진주류씨 가문 3인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개설]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는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되어 죽은 류취장(柳就章)[1671~1722]의 아들 류선기(柳善基)[1695~1722]와 류취장의 처 전주이씨(全州李氏)[1669~1722], 류선기의 처 경주이씨(慶州李氏) 등 세 인물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725년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류취장의 정부인 전주이씨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후손인 수사 이두천(李斗千)의 딸로, 1669년(현종 10)에 태어났다. 전주이씨의 남편 류취장은 류형(柳珩)[1566~1615]의 4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훈련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 류선기는 류취장의 장남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훈정(訓正)과 이천부사를 지냈다. 류취장은 1722년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아들 류선기와 함께 사사(賜死)[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되어 이른바 ‘오절도(五節度)’라고 일컬어졌다.

전주이씨는 남편과 아들이 모두 사화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며느리[류선기의 처 경주이씨]와 함께 서로 굶어 죽기를 약속하고 1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결국 전주이씨와 며느리 경주이씨는 하루 사이에 모두 숨졌다. 한편 류선기의 노비인 사동(士同)과 돌현(乭玄)은 주인의 시신을 거두고 류선기의 두 어린 자식들을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류취장 부자는 1740년(영조 16)에 복관되었고, 류선기는 1756년(영조 32)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그 후 류취장은 1782년(정조 6) 병조판서에 증직되었고, 1802년(순조 2)에는 무민(武愍)의 시호를 받았다. 1805년(순조 5)에는 부조지전(不祧之典)을 받았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저수지가 있는 황골마을에 진주류씨 문중에서 건립한 충렬사가 있다.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는 충렬사 오른쪽으로 충신 유지걸 정려와 함께 세워져 있다.

[변천]

1725년(영조 1) 충청감사 홍용조(洪龍祚)의 보고로 류선기, 전주이씨, 경주이씨 세 명의 효행과 절행(節行)[절개를 지키는 행실]에 대하여 명정의 은전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류선기의 노비로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사동과 돌현 등에게도 상을 내렸음을 『충효등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등의 자료에는 세 사람에 대한 명정이 1742년(영조 18)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여지도서』나 『충청도읍지』의 기록이 명정이 아닌 건립에 관한 기록일 수도 있다. 연대로 보아 최초 건립 이후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중수기나 관련 자료가 없어 확인하기는 어렵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다포 양식을 갖추었다. 맞배지붕 건물로, 양쪽에 방풍판이 있다. 사면에는 홍살문이 둘러져 있으나 하단부에 벽돌을 쌓아 막았다.

최근에 중수한 듯한 8각 고주초석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정려 바닥은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정려 주변에는 보호시설을 두지 않았다.

[현황]

정려 내부에는 3기의 명정현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에는 류선기의 명정현판[162×34㎝], 왼쪽에는 류취장 처 전주이씨의 명정현판[158×34㎝], 오른쪽에는 류선기 처 경주이씨의 명정현판[138×38㎝]이 걸려 있다.

정려 중앙에는 1988년 8월에 류근무가 지은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비[54×150×24㎝]가 세워져 있다. 진주류씨 삼효열 정려는 2017년 4월 2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 집안에서 한 해에 세 인물이 효열 명정을 받은 사실을 통하여 조선 후기 진주류씨의 사회적 위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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