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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리 몸티 기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186
한자 松鶴里身峙旗告祀
영어공식명칭 Sacrificial Rite for the Farming Flag of Songhakri Momti Villag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송학리 몸티 기고사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리 마을회관 앞마당지도보기
성격 고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
신당/신체 농기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리 몸티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에 풍년을 비는 뜻에서 농기에 지내는 고사.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1리 몸티[身峙]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보름날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고 마을로 드는 액을 막는 뜻에서 기고사를 지낸다. 과거에는 깨끗한 사람으로 유사를 선출하여 유사의 집 바깥마당에 기를 세워 놓았다. 기는 정월 초사흗날 손 없는 방위를 가려서 세웠다. 이즈음에는 여러 사정으로 마을회관 앞마당으로 옮겨서 기를 세운다.

[연원 및 변천]

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에도 순사들의 눈을 피하여 정성을 드렸을 정도로 기고사의 전통이 오래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현재 마을에서 소장하고 있는 농기는 2개이다. 1986년에 새로 지은 것과 이전부터 있던 오래된 기이다. 옛날 기에는 제작 연도가 신미년(辛未年)[1871년 추정]으로 표기되었다. 두툼한 광목천 가운데에 ‘신농유업(神農遺業)’ 네 글자가 묵서되어 있다. 왼쪽에는 신미년(辛未年) 정월(正月) 십오일(十五日)에 중건(重建)하였다는 내용이 희미하게 적혀 있다. 기폭의 오른쪽 상단에는 직사각형[가로 약 30㎝, 세로 약 50㎝]의 천을 덧대었다. 기에는 희미하지만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가 고을을 시찰하다가 농기에 수결하고 수결문을 지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수결한 기는 오래 전에 낡아서 없어지고 1871년에 새로 기를 장만하면서 수결 부분만 잘라 덧대었다.

마을에서는 예전 농기를 오래도록 쓰다가 1986년[병인년]에 새 것으로 교체하였다. 새 기는 전체적인 형태가 옛 것과 비슷하고, 마곡사 주지가 직접 글을 썼다.

[절차]

정월 초승이면 풍물패가 가가호호 다니면서 제비를 갹출하였다. 기고사에는 종고개[유계리], 창말 주민들도 참여하였다. 풍물패는 어느 집이고 들어가자마자 조왕부터 하여 장광, 안마당, 우물 곳곳을 돌면서 터를 눌러 주었다.

주민들은 회의를 열어 기고사를 맡아서 지낼 유사를 선출하였다. 유사는 깨끗한 사람으로 가렸다. 유사로 뽑히면 정성 드리기 전까지 근신한다. 유사 집 대문 앞에는 황토를 펴 놓고 금줄을 쳐서 부정을 막았다. 유사는 사흘 전부터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집 밖 출입을 삼간다.

이즈음에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정성 드릴 사람들만 마을회관으로 모인다.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기고사는 해가 떠오르기도 전인 새벽 4시 경에 지낸다. 해마다 10여 명의 주민들이 고사에 참여한다. 유사는 농기 앞에 고사상을 마련한다. 상 위에는 떡 한 시루, 돼지머리, 대추, 밤, 곶감 등을 진설한다. 준비가 끝나면 유사가 앞으로 나아가서 첫잔을 올리고 절한다. 기고사는 유교식으로 경건하게 모신다. 축문 대신 유사가 마을의 안과태평을 비는 뜻에서 마을 소지(燒紙)[종교 및 신앙 목적으로 종이를 태우는 행위]를 올린다. 주민들도 각자 소지를 한 장씩 올리며 소원을 빈다. 마지막으로 상 위의 제물을 내려서 음복한다.

[현황]

마을에서는 요즘에도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농기를 세우고 고사를 지낸다. 주민들 모두 하루 전날 저녁부터 마을회관에 모여서 기고사 지낼 준비를 한다. 이튿날 동틀 무렵에 유사 일행은 고사상을 차려 놓고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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