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12
한자 燕岐大捷碑公園
영어공식명칭 Memorial onument park of victory at Yeong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도신고복로 586[용암리 203-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고복자연공원 내 연기대첩비공원 건설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고복자연공원이 공원으로 지정
현 소재지 연기대첩비공원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도신고복로 586[용암리 203-1]지도보기
성격 시설
면적 1.949㎢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고복자연공원 내에 있는 공원.

[개설]

연기대첩비공원연기대첩을 기념하는 연기대첩비와 현대 추상 조각작품을 설치한 공원 시설이다. 충청남도 연기군이 조성하였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후 세종특별자치시의 시립 공원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연기대첩비공원은 고려시대의 연기지역 구국 전투 중 하나인 연기대첩을 기리기 위하여 고복저수지월하천 유입 부분에 1997년 충청남도 연기군이 건립한 연기대첩비가 있는 공원이다. 연기대첩비공원고복자연공원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연기대첩비공원의 모티브가 된 연기대첩은 고려 충렬왕 재위 기간인 서기 1291년부터 1292년에 일어난 합단(哈丹)의 침입 사건 당시에 고려군과 원군의 연합 세력이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정좌산(正左山)일대에서 합단군을 섬멸한 전투이다.

합단 세력은 원의 반란 세력으로 쑹화강과 헤이룽장강 일대에서 원(元)제국에 저항하였다. 합단 세력은 원의 공격을 받아 원래의 점령 지역에서 밀려나 1291년 정월 고려를 침공하였으며, 이들은 원주와 충주에서 고려군과 민중의 저항에 패배하였다. 합단 세력은 정좌산 근처에 주둔하다가 이들을 추격해온 인후, 한희유, 김흔 등이 이끄는 고려군과 원군의 기습을 받아 패배하였다. 해당 시기는 원과 고려가 함께 일본을 점령한 이후의 시기로 우리 역사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는 사건이다. 한편 세종특별자치시의 주요 산인 원수산 역시 연기대첩과 관련된 지명이다.

[변천]

연기대첩은 문헌 기록에만 존재할 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1997년 충청남도 연기군이 연기대첩비를 건립하면서 역사적 사건을 공원과 관광의 모티브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구성]

연기대첩비공원고복자연공원 내에 높이 10m의 연기대첩비와 현대 추상 조각 작품 20여 점이 설치된 잔디 광장, 소공연장을 합하여 조성되었다.

[현황]

연기대첩비공원고복자연공원 내에 있다. 고복자연공원은 1.949㎢[고복리 1,949㎡, 용암리 805.864㎡]의 면적의 고복저수지 상류 부분에 위락시설(慰樂施設)[관광지나 공원 등지와 같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락함을 제공하기 위하여 조성된 시설]을 설치하여 개발하였다. 고복자연공원은 1990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연기대첩비공원은 1997년 고복자연공원 부지 내에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