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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67
한자 晋州鄭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선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00년대 후반 - 정윤필 출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80년(성종 11) - 정업중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00년대 초반 - 정윤필 사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41년(중종 36) - 정업중 사망
본관 진주정씨 - 경상남도 진주시
입향지 진주정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진주정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정윤필 묘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종중공원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진주정씨 재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102-4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진주정씨 사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 102-4 지도보기
성씨 시조 정예
입향 시조 정윤필|정업중

[정의]

정예를 시조로 하고 정윤필, 정업중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진주정씨는 15세기 후반 충장공파의 정윤필이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16세기 후반에는 연일파의 정업중이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 남면 연기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다.

[연원]

진주정씨(晋州鄭氏)의 원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 그러나 지백호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진주정씨는 상계가 연결되지 않는 8파가 각각의 중시조를 시조로 삼고 고려시대부터 경상남도 진주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파로 나눌 수 있다. 시조 정예(鄭藝)는 고려통합벽상삼한공신으로 광록대부(光祿大夫)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다. 정예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1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입향 경위]

전의면 영당리 진주정씨는 충장공파(忠莊公派)로 단종 대에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정분(鄭苯)[?~1454]을 파조로 한다. 입향조는 정분의 4세손으로 진사(進士)를 지낸 정윤필(鄭胤弼)[1400년대 후반~1500년대 전반]이다. 정윤필은 원래 경기도 양평에서 살다가 영당리 만곡으로 이거(移居)하였는데 정확한 입향 사유는 전하지 않는다. 정윤필의 부인이 김익렴(金益廉)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처가와의 인연으로 인해 영당리를 세거지로 택한 것으로 추측된다.

남면 연기리의 진주정씨 연일파 입향조는 정업중[1480~1541]으로 자는 경지(敬之)이다. 아버지는 정지종(鄭知宗)이며 어머니는 부여서씨(扶餘徐氏),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정업중은 가선대부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정업중은 원래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일대에서 거주하다가 500여 년 전 연기의 남면 연기리 고자동으로 이거(移居)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입향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는 바가 없다.

[관련 유적]

정윤필의 묘는 전동면 미곡리 종중 공원묘에 있고 1992년에 건립된 진주정씨 재실이 전의면 영당리 102-4번지에 있으며, 예로부터 전해 오는 교지(敎旨)를 비롯한 몇 종류의 고문서가 남아 있다.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받은 정원룡(鄭元龍)과 정원룡 처 효부 파평윤씨(坡平尹氏),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중추원의관(行中樞院議官)을 지냈으며 내부협판(內部協辦)을 증직 받은 정원룡의 아들 정대권(鄭大權)[1850~1902], 정원룡의 손자 정헌세(政憲世)의 처 열녀 한산이씨(韓山李氏) 등 네 사람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진주정씨 사효 정려전의면 영당리에 있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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