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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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道 |
영어음역 | Yeongnamdo |
영어의미역 | Yeongnamdo Provinc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집필자 | 이근열 |
[정의]
고려시대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관할하던 10도 중의 하나.
[명칭유래]
영남이란 죽령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언양·울산·양산·동래·기장 등의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형성 및 변천]
983년(성종 2)에 실시한 지방제도로 지방에 12목인 광주(廣州)·양주(楊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황주(黃州)·해주(海州)를 두고 전국을 10도로 나누었을 때 경상도를 영동도와 영남도로 구분한 것에 기원한다. 이때 나눈 10도는 관내(關內)·중원(中原)·하남(河南)·강남(江南)·영남(嶺南)·영동(嶺東)·산남(山南)·해양(海陽)·삭방(朔方)·패서(浿西)등이었다. 이 도 아래에는 각각 주(州)·부(府)·군(郡)·현(縣)을 두었다.
지금의 경상도는 영남도·영동도·산남도에 해당된다. 영남도는 상주(尙州) 관할이었고, 그 아래에 12주 48현이 있었으며, 영동도는 금주(金州) 즉 경주 관할로 9주와 48현이 있었다. 또 산남도(山南道)는 진주(晋州) 관할로 10주 37현이 있었다. 1106년(예종 원년)에 이를 다시 통합하여 경주(慶州)·상주(尙州)·진주(晋州) 관할 지역을 합하여 경상진주도(慶尙晋州道)라 했다. 이후 1171년(명종 1)에는 이 경상진주도를 양분하여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합주도(晋陜州道)라 했다.
이후 1186년에 다시 양도(兩道)를 합해 경상주도(慶尙州道)라 하였다가 1204년(신종 7)에 상진안동도(尙晋安東道)로 개칭하였다가 뒤에 경상진안도(慶尙晋安道)라 고쳤다. 1314년(충숙왕 1)에 경상도라는 명칭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1896년(고종 33)에 경상도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리될 때까지 약 580여 년간 그대로 사용했다.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성종은 또 주·부·군·현및 관방과 역참, 강안과 포구의 이름을 고쳤다. 드디어 경내를 십도(十道)가 되게 나누고 12목을 두었는데 각각 절도사를 두었다. 그 십도는 관내·중원·하남·강남·영남·영동·산남·해양·삭방·패서도인데 관할하는 주부와 군현이 모두 580 여처나 되니 동국의 지리가 이로부터 지극히 성대하게 되었다. 현종 즉위 초에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부와 75도의 안무사를 두었다. 얼마후 안무사 제도를 혁파하고 4도호 8목을 두었는데 이로부터 5도와 양계가 확정되었으니 양광·경상·전라·교주·서해도와 동계와 북계이다. 4도읍·8목·15부·129군·335현·29진이다(成宗又改州府郡縣及關驛江浦之號.遂分境內爲十道就十二州.各置節度使其十道一曰關內二曰中原三曰河南四曰江南五曰嶺南六曰嶺東七曰山南八曰海陽九曰朔方十曰浿西其所管州郡共五百八十餘東國地理之盛極於此矣.顯宗初廢節度使置五都護七十五道安撫使.尋罷安撫使.置四都護八牧自是以後定爲五道兩界曰楊廣曰慶尙曰全羅曰交州曰西海曰東界曰北界京四牧八府十五郡一百二十九縣三百三十五鎭二十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