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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09
한자 林氏家廟
이칭/별칭 임난수 부조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59-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30년(세종 12)연표보기 - 임씨 가묘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대원군 서원훼철령으로 임씨 가묘 철폐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 임씨 가묘 기호서사 터에 새로 세움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02월 14일연표보기 - 임씨 가묘 연기군 향토유적 제4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임씨 가묘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2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임씨 가묘 연기군 향토유적 제42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임씨 가묘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59-1 지도보기
원소재지 임씨 가묘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59-1
성격 건물
양식 전통한옥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부안임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2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임난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개설]

임씨 가묘부안임씨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林蘭秀)[1342~1407]를 제향하는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에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기호서사(岐湖書社)가 훼철(毁撤)[헐어서 치움]된 후 세워졌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은 옛 연기군 남면 나성리였던 곳이다. 나성리금강변에 접해 있는 낮은 구릉지대로, 이곳에서 보이는 금강의 풍경이 아름다워 금강 8경의 하나라 칭해질 정도였다.

임씨 가묘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교 북변에 자리하고 있다. 임씨 가묘의 뒤편에 ‘나성동독락정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변천]

세종 지역 부안임씨가의 입향조인 전서공 임난수가 1407년에 사망한 후 1419년 고려의 유신이면서 조선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임난수의 충절을 기려 그의 사당에 ‘임씨 가묘’라 이름하고 부조묘[불천지위]를 내려 주었다. 부조묘는 4대 봉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부안임씨 전서공파 문헌록에 실린 행단 구사우실기[상량문]에 의하면 1430년 임중(林重)이 주도하여 지금의 양화리 숭모각 자리에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1710년 임난수를 제향하는 서원 ‘기호서사[세덕사]’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1741년에 훼철되고 1801년에 다시 중건할 때 3인을 추가하여 4위를 제향하게 되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철폐되었지만 오직 전서공 임난수의 위패만큼은 부조묘로 인정받아 계속해서 제향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57년 기호서사 터에 ‘임씨 가묘’를 새로 세웠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긴 계단이 2단으로 이어지고, 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나온다. 가묘 주변을 낮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현황]

임씨 가묘가 세워진 자리는 기호서사의 옛터이다. 기호서사는 훼철 이후 복건되지 못하다가 1957년 이곳에 건립하여 전서공 임난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임씨 가묘 앞에는 임난수 신도비가 있다. 임씨 가묘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기군에는 지역의 대표 성씨를 상징하는 ‘천홍만림(千洪萬林)’이란 말도 있었다. 홍씨와 임씨가 번성하였다는 뜻이다. 이 중 ‘만림’이라 일컬어진 부안임씨는 옛 연기 지역에서 가장 큰 성씨였다고 할 수 있다.

나성리에는 부안임씨가의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임씨 가묘부안임씨 집성촌의 구심점이 되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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