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B03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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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구판장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종락 |
한쪽에서 “취나물 사러 오소.”를 외치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갑술생 개띠 이순조(75) 할머니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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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조(75) 할머니
이름이 좋다고 하자, “이름이 좋는교. 이전에사 책 보고 짓나. 친정아버지가 지었겠지.” 아주머니 한 명이 다가와 “콩 얼맙니까?”라고 묻자 “콩 한 되에 8천원인데 할매 한 키가 ‘7천원에 팔아라.’해서 냈다. 7천원에 사 가소.”라고 대답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는지 그냥 돌아선다.
저쪽에서 나물을 사는 등산객이 보이자, “취나물 여도 하나 사 주소.”라는 부탁의 말을 건넨다. 등산객은 이내 할머니 앞으로 와서 “하나 주소.”하며 한 봉지를 집어 든다. 그의 손엔 몇 개의 나물 봉지가 들려 있다. 이 할머니 것, 저 할머니 것, 골고루 팔아 준 모양이다. 후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부인은 “와 이래 정신없게 하는교.”라고 하면서도 공손하게 돈을 건넨다. 이순조 할머니는 돈을 받으면서 하나라도 더 팔고 싶은 마음에 “고맙심더. 돌미나리는 안 사는교? 돌미나리, 돌나물, 취나물, 상추, 멀구(머위), 고소도 요새 무쳐놓으면 맛있슴더.”라며 권한다. 다년간 쌓인 그만의 비법인 모양이다.
옆에 서 있다가 나물 한 봉지를 집어 든다. 그가 “하하하”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고소(고수나물)도 요새 무쳐놓으면 맛있슴더. 쪼매 늙었는데 생거 지름 넣고 무쳐서 조래기 해 먹으면 됩니더.”라며 조리법을 설명한다. 다른 것 하나를 더 고르자 “이게 진짜 취나물임더. 아는교? 아저씨, 이 나물은 데쳐야 향기 솔솔 나고 맛있심더. 고것도 2천원, 다 2천원. 봉지 넣어 드리지. 사 가면 각시가 뭐라 하지는 안 할끼다.”라며, 많이 사 왔다고 또는 조리하기 귀찮아서 타박 당할까봐 안심까지 시켜주는 친절을 베푼다.
나물 값을 치르자 “고맙심데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이어서 “여 있어도 팔리네. 서운암 가면 딸내미가 저녁에 데리러 와야 되거든. 안 그라면 멀어서 못 온다. 남의 차 얻어 타고 오니까 눈치가 보이더라. 딸은 ‘엄마 너무(남의) 차 말라꼬 타노. 연락하면 갈 낀데 기다리지.’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굳이 멀리까지 다른 사람에게 신세 져 가면서 나물 팔러 갔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말로 들린다. 또 돌아올 때마다 음식점 하느라 바쁜 딸에게 데리러 올 것을 부탁하기도 미안한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두 딸은 함께 서리마을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다.
이순조 할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19살에 결혼하여 부산 동래로 시집갔다. 결혼 전에 쌀가마 쌓아 놓고 살다가 시집에 가보니 동서가 안남미 한 되 씩 팔아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서 내다 파는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둘째 딸을 낳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지금 혼자서 밭 2천㎡를 가꾸는 여장부이다. “콩 갈고, 옥수수 갈고, 채전해 먹고, 상추 키워서 팔고, 나물도 심어 베어내고 안 놀고 다 해 먹심더. 봄에는 상추, 돌냉이 나물 뜯어가 팔고, 여름에 옥수수 끊어가 팔고, 가을에는 김장배추 소문 거(배게 심은 것) 추어다(솎아서) 팔고, 겨울에는 무시 농사지은 것, 시래기 같은 거 갔다 팔고, 그것뿐이다.”
그의 말이 빠르게 이어진다. “밭에는 우리 할배 있을 때, 과일 단감나무, 배나무, 오만 거 다 심어 놓았다. 배나무 다 베고 몇 그루 남았는데 배 봉지 씌울라꼬 100개 언양장에서 사다 놓았다. 손 보고 내가 다 한다.”며 강한 면모를 보인다. 언뜻 생각해도 남자가 하기도 벅찬 일인 것 같다. 그걸 혼자 힘으로 다 해낸다니 대단한 할머니이다.
“우리 할배 제사 두 번 지나갔다. 6·25 참전용사인데 영락공원에서 초상 치르고 영천공원묘지(국립영천호국원) 거기 갔다. 참 좋데요. 더군다나 위치가 신작로 올라가는 데 양지바르고 별시리 좋대요. 벌초할 것도 없고 깨끗하고 보리밥떡거리 하나 주울 것 없고. 팔월에 영천 고향 시부모 성묘 때 가서 꽃다발 하나 새로 꽂고 오면 되고. 나도 같이 간다고 그 옆에 자리 잡아 놓았다 하데.” 오랜 세월,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하며 등 부비며 살았던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이순조 할머니는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딸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찜질방에서 한 주 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고 오는데, “딸들이 잘한다.”며 자랑을 한다. 딸이 이틀이나 실어다 줘서 오늘 저녁에 가면 손자들한테 한 닢 줘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그는 비록 혼자 힘으로 힘들게 살아가지만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이래 벌어서 쓴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그는 오늘도 만남의 광장 한쪽에서 “아지매 취나물 사세요.”를 외치며, “돌미나리 하고 머구(머위), 상추하고. 머구 한 봉다리 천 원, 상추 한 봉다리 천 원. 돌미나리 한 번 보소. 얼마나 좋노. 미나리 오늘 아직(아침)에 캐가 아침에 다듬은 기다. 머구 한 봉다리 안 사 갈란교?”며 권한다. 그의 목소리가 솔향기처럼 은은하게 공중으로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