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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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는 2012년 7월 출범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젊어지고 있다. 2012년 41.2세이던 평균연령은 2013년 40.1세, 2014년 38.5세, 2015년 37세, 2016년 36.8세, 2017년 36.7세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원인에 대하여 세종시 관계자는 “신도심지역 아파트와 주상복합 등의 입주 수요가 꾸준한 데다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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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후를 시조로 하고 최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강화최씨는 제정공파의 최완이 16세기 중엽에 처향인 연기현으로 입향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조치원읍 봉산리에 세거하였으며 입향조의 묘소와 후손들의 효열 정려 등 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강화최씨의 시조는 고려시대의 문신 최익후(崔益厚)이다. 최익후는 문과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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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에서 부강면 노호리를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 경부선 철도의 세종특별자치시 경유 구간은 충청남도 천안시와 대전광역시 등으로 중부지방의 주요 지역을 연결하고, 조치원에서는 충북선과 연결되어 충청북도 내륙지방과 영동지방을 연결해주는 중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과거 명칭인 경성과 부산광역시를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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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에서 부강면 노호리를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 경부선 철도의 세종특별자치시 경유 구간은 충청남도 천안시와 대전광역시 등으로 중부지방의 주요 지역을 연결하고, 조치원에서는 충북선과 연결되어 충청북도 내륙지방과 영동지방을 연결해주는 중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과거 명칭인 경성과 부산광역시를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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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1904년까지 세종 지역을 포함하여 건설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경부선 철도(京釜線鐵道) 부설 공사는 1901년에 착수하여 1904년 완공되었다. 경부선이 전의군, 연기군을 통과하기 때문에 경부철도부설공사에 전의 지역과 연기 지역의 많은 노동력이 수탈되었다. 조선 최초로 설치된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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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거명을 중시조로 하며 이응방, 이장준, 이광복, 이영필, 이집상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주이씨는 국당공파와 석탄공파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입향하였다. 주로 연서면 봉암리, 장군면 평기리, 부강면 문곡리, 소정면 고등리, 조치원읍 등지에 세거하였다. 경주이씨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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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거명을 중시조로 하며 이응방, 이장준, 이광복, 이영필, 이집상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주이씨는 국당공파와 석탄공파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입향하였다. 주로 연서면 봉암리, 장군면 평기리, 부강면 문곡리, 소정면 고등리, 조치원읍 등지에 세거하였다. 경주이씨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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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문곡리 부강약수터 정자 밑에 있던 넓은 바위. 넉바위는 넓은 바위란 뜻인 ‘넙바위’, ‘넉바우’에서 변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넉바우’, ‘넉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넉바우마을’ 또는 ‘넉바위 마을’로도 불리었다. 넉바위는 외지 사람들도 찾는 명소인 부강약수터의 정자 밑에 있었으며, 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진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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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서 하천, 강 등의 수로(水路)를 건너는 다리.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세종특별자치시는 조선 건국 이후 600여 년간 한반도의 수도인 서울과 지형이 비슷하다. 한강과 마찬가지로 금강 본류가 도시를 크게 남북으로 가른다. 세종특별자치시에는 국가하천 2개[금강·미호천], 지방하천 6개[제천·방축천·삼성천·용호천·문주천·내삼천], 소하천 7개[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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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서 하천, 강 등의 수로(水路)를 건너는 다리.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세종특별자치시는 조선 건국 이후 600여 년간 한반도의 수도인 서울과 지형이 비슷하다. 한강과 마찬가지로 금강 본류가 도시를 크게 남북으로 가른다. 세종특별자치시에는 국가하천 2개[금강·미호천], 지방하천 6개[제천·방축천·삼성천·용호천·문주천·내삼천], 소하천 7개[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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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세종특별자치시를 거쳐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를 잇는 일반 국도.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을 기점으로 전라남도 서남부 내륙 지역[장흥·영암·나주]을 거쳐 서해안고속도로와 나란히 호남 서해안 지역[함평·영광·고창·부안·김제]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 다음 충청남도 내륙지역[논산·공주·연기]을 거쳐 천안시까지 남북 방향으로 잇는 간선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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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한 창녕성씨 회곡공파 집성촌. 금남면 달전리에 세거하는 창녕성씨 회곡공파는 회곡공 성석용(成石瑢)[?~1403]을 파조로 하며, 성석용의 손자 성희(成熺)[?~1464]가 입향조이다. 금남면 달전리 전체 100가구 중 50가구가 창녕성씨이다. 금남면 달전리의 창녕성씨는 성석용을 파조로 하는 회곡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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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에 있던 정자의 터. 금벽정(錦壁亭)은 조석명(趙錫命)[1674~1753]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로, 탁금정(濯錦亭)과 같은 장소에 있었다. 금벽정은 10여 년 앞서 탁금정이라 불려지기도 한 곳으로, 1658년 윤선거(尹宣擧)[1610~1669]와 1661년 윤순거(尹舜擧)[1596~1668] 및 1년 뒤 윤선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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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한 법정리. 마을의 지형(地形)이 풍수지리적으로 보아 용(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形局)과 닮아 지명을 기룡(起龍)이라고 하였다. 기룡리에는 막은골, 동막골, 은골, 자룡, 정골, 신림, 시묫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막은골[망골]마을은 기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서울로 향하는 큰길이 있었는데 도둑이 많아 길을 막아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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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남이웅의 부인이자 병자호란 당시 한글 일기인 『남평조씨 병자일기』를 쓴 인물. 남평조씨(南平曺氏) 조애중(曺愛重)[1574~1645]은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부인으로, 병자호란이 벌어지자 피난을 떠나며 당시 겪은 일을 상세하게 한글 일기로 남겼다. 남평조씨 조애중의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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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경부선 기차역. 내판역의 역명은 내판리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내판역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收奪)[강제로 빼앗음]정책을 용이하게 추진하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경부선철도 개통 후에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내판역은 여객과 화물 운송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동시에 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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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경부선 기차역. 내판역의 역명은 내판리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내판역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收奪)[강제로 빼앗음]정책을 용이하게 추진하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경부선철도 개통 후에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내판역은 여객과 화물 운송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동시에 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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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 속한 법정리. 대곡리(大谷里)는 1914년에 전의군 북면의 대사동과 맹곡리의 이름을 따서 대곡라는 명칭으로 연기군 전의면에 속하여 있다가 소정면이 신설되면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궁말·역말·한적골 등이 있다. 궁말은 역말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있는 들에 궁을 지을 만한 좋은 터가 있었다 하여 궁말 또는 궁리라 불린다. 역말은 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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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굳어 가자 일본인들은 지배자 행세를 시작하였고, 특히 조선에 이민 온 하층민의 행패가 심하였다. 청나라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하여 잠시 물러난 동학군은 이번에는 일본군과 무능한 조정에 저항하기 위하여 갑오년 9월 일제히 봉기하였다. 전라도의 남접과 충청도의 북접이 힘을 합하였으며, 2대 교주 최시형의 교령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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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과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 망경산(望京山)[385m]은 세종특별자치시와 충청남도 천안시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전동면에서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으로 넘어가는 고소재고개에서 동쪽에 있는 산이다. 산은 낮지만 북쪽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흑성산과 은석산을 넘어 멀리 서울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산이라 하여 망경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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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과 관련하여 언어와 문자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예술.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은 세종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세종 지역에서 출생·거주하는 등 연고가 있는 사람이 언어를 활용하여 남긴 작품을 의미한다. 지역의 문학은 입으로 전승될 수도 있고 문자를 통하여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전체를 포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문자화 된 작품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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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의 강화최씨 집성마을. 강화최씨 집성마을로, 최완[1510~1570]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서울에서 이거·입향 후 500여 년간 발전하여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배출한 특별한 마을이다. 동족조직이 강한 모습이 숭모단 제향, 시제(時祭)[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마을 샘 제사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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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 있는 경부선 기차역. 부강역은 경부선과 지선 철도인 부강화물선이 분기하는 기차역이다. 내판역과 매포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울 기점 139.8km 지점에 있다. 부강역의 역명은 부강리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경부선철도를 건설하면서 철도 용지(用地)[어떤 일에 쓰기 위한 토지]가 무상수취(無償收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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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있던 이만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웠던 사당. 이만원(李萬元)[1651~1708]은 연안이씨 태자첨사공파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만원의 고조부 이광정(李光庭)은 호성공신에 녹훈(錄勳)[훈공을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되고 연원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며, 이광정의 딸은 숙종 계비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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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여러 유형의 이야기. 설화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변성(可變性)이 크다. 구연자는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때 자기 나름의 서사 구조로 재구성하여 구연한다. 설화의 전달 형식이 입에서 입을 통하여 전해지는 ‘구연 방식’이기 때문이다. 설화는 크게 신화, 설화, 민담 형태로 분류하지만 나누는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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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신안리에 있는 경부선 기차역. 서창역의 역명은 서창리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서창역은 1978년 경부선과 충북선 철도를 직접 연결하는 오송선이 분기하는 신호장역으로 건립되었다. 서창역은 경부선 기차역으로 전동역과 조치원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 기점 126.1km 지점에 있다. 경부선과 오송선의 신호장으로, 경부선과 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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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동양선교회를 모체로 하는 개신교의 한 분파. 성결교는 여타 개신교 교단과 달리 한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성결교는 일본 도쿄에서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과 정빈이 1907년 5월 서울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성결교’라는 명칭은 1921년 9월 ‘동양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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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복위운동에 힘쓰다 죽은 사육신 중 한 명으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문절사에 제향된 인물.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허조 등과 단종복위운동을 계획하다 실패하여 처형된 인물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충절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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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 지역에 정착한 창녕성씨 입향조이자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한 문신. 성희(成熺)[?~1464]는 창녕성씨로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창녕성씨가 자리 잡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5촌 조카 성삼문이 세조에게 처형된 후 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성희도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김해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달전리에 터를 잡았다. 성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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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은 2014년 9월 15일 운영을 시작하였다.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회원사 중 충남고속, 코리아와이드경북을 제외한 모든 고속버스 회사가 운행된다. 2018년 11월 7일부로 코리아와이드경북이 세종특별자치시 기점 노선과 경유 노선 모두 KD운송그룹에 넘기면서 터미널을 떠났다. 서부산[사상] 노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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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축소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2005년 3월 2일 국회를 통과한 이후 첫 마을 조성 사업이 세종특별자치시 개발의 시초를 열게 되었다. 2007년 12월 행정 부처 이전에 대한 반대와 같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도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세종특별자치시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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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에 있는 경부선 철도역. 소정리역의 역명은 소정리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소정리역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收奪)[강제로 빼앗음]정책을 편리하게 추진하고,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1905년 경부선철도를 개통하면서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소정리역은 여객과 화물 운송의 주요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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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는 2018년 12월 10일 세계 최초로 영국표준협회(BSI)로부터 스마트시티 국제인증[ISO37106]을 받았다. 이에 앞서 영국표준협회는 2018년 3월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케임브리지(영국), 모스크바(러시아), 멜버른(호주), 두바이(UAE) 등 5개 도시를 스마트시티 국제인증[ISO37106] 세계 5대 시범도시로 선정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가 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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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의 향나무. 연기 봉산동 향나무는 조선 중종 때 최완이 봉산동 지역에 정착한 뒤 숨지자, 최완의 아들 최중룡(崔重龍)이 서울에서 내려와 시묘살이를 하고 효성을 후손에게 보이기 위하여 심었다고 전하여진다. 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정원수 등으로 널리 심어져 왔으며 향의 원료나 가구의 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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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개항기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척화비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1866년 비문을 짓고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처에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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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29일 조치원읍 공회당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단체를 조직한 사건.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미·소 군정이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남과 북에서 실시되었다.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3국[미국, 영국, 소련] 외상 회의에서 연합국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여 공동 위원회와 임시 정부가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협정을 맺을 것에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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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30일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연기군 좌익 세력 중심의 운동. 연합국은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등을 연쇄적으로 개최하였음에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전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한 합의는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간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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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연기현(燕岐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연기군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에 흡수·폐지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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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일대에 있는 산. 용수산(龍帥山)[223.4m]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구릉성 산지로,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용수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149권 연기현편에 “봉화가 1곳이니 연기현의 남쪽 용수산이다[熢火一處 在縣南 龍帥山]”라고 실려 있다. 또 “동쪽으로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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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벽(尹滋壁)[1884~1930]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자벽은 1919년 3월 13일 옛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전의면 신정리에 거주하는 이수욱(李秀郁)은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장례]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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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훈(尹滋勳)[1894~1936]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윤자훈은 1919년 3월 13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윤자훈은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장례]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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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에 있는 공설 납골당. 은하수공원은 2009년에 준공하여 화장 납골 문화를 지향하는 현대 장례시설을 갖춘 장례식장이다. 망자(亡者)가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곳을 공원으로 명명한 것은 견우, 직녀가 만나는 길인 은하수를 따라 영면의 세계로 향하는 망자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장소가 바로 ‘은하수 공원’이기 때문이다. SK그룹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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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필복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남민(南敏)을 시조로 하는 의령남씨는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후손들이 1700년대 중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에 정착한 이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의령남씨 시조 남민은 당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신라에 귀화하여 경덕왕 때 남씨 성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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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 불만과 반란을 일으킨다는 무고를 받은 이괄이 일으킨 내란 사건.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은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조선 왕가 종실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하며 일으킨 반란이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다. 조선 내란으로는 처음으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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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거주한 문인. 이상(李翔)은 조선 후기 문인으로,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에 세거하는 우봉이씨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숙종 대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계 입장을 취하다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고 끝내 기사환국(己巳換局)[1689년 남인이 희빈장씨의 소생인 원자 정호 세자의 책봉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으로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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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수욱(李秀郁)[1890~1970]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출신으로 전의면 전의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수욱은 1919년 3월 13일 연기 전의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수욱은 고종의 국장(國葬) 참례를 위하여 2월 26일 상경하여 3·1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서울의 상황을 파악한 후 3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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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오현 중의 한 명으로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문신.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신독재 김집(金集)의 천거(薦擧)[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함]로 1634년(인조 12)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이어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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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 4월 일본은 20만 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육군 병력으로는 15만 8700명이나 되는 대군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 지방까지 유린했다. 하지만 전국 팔도 곳곳에서 의병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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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덕천군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사당. 조선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은 가난한 백성을 정성껏 돕고 왕자 신분임에도 들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어느 해 여름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이재민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덕을 쌓는 어른이라 하여 적덕공이라고도 불렸다. 덕천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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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덕천군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사당. 조선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은 가난한 백성을 정성껏 돕고 왕자 신분임에도 들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어느 해 여름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이재민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덕을 쌓는 어른이라 하여 적덕공이라고도 불렸다. 덕천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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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 장화진은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 출신으로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였다. 장화진(張和鎭)[1899~1974]은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에서 거주할 때 부친 장재학(張在學)이 일본 호적에 들어가지 않아 서울의 감옥에 들어갔다. 부친이 감옥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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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에 있는 경부선의 신호장역. 전동역의 역명은 전동면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전동역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收奪)[강제로 빼앗음]정책을 용이하게 추진하고,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1905년 경부선철도를 개통하면서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전동역은 여객과 화물 운송의 주요 기능을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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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하며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의 덕성서원에 배향된 학자. 전우(田愚)[1841~1922]의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고옹(蠱翁)·양하왕인(陽下尫人)이다. 초명은 경륜(慶倫)·경길(慶佶)이다. 21세에 당시의 거유(巨儒|鉅儒)[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름난 유학자] 신응조(申應朝)의 권유로 서울에서 직접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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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 있는 경부선 기차역. 전의역의 역명은 전의면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전의역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收奪)[강제로 빼앗음]정책을 용이하게 추진하고,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1905년 경부선철도를 개통하면서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전의역은 여객과 화물 운송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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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전의현(全義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전의군으로 개칭되어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연기군에 병합되어 일부 지역이 연기군 전의면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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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여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고을나(高乙那)를 시조(始祖)로 하고 고여우(高汝雨)를 입향조로 하는 제주고씨 문충공파(文忠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정착한 이래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제주고씨는 탐라(耽羅) 개국 설화에 나오는 고을나를 시조로 한다. 시조의 46세손 고말로(高末老)는 고려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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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초수(全義椒水)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상대부 마을, 차령산맥의 흑성산 줄기인 월조산 아래에 자리한다. 세종은 충청도 온양과 강원도 이천(伊川)의 온천에서 풍증(風症)과 눈병 치료를 위하여 봄철마다 여러 차례 온천 요양을 하였다.[세종 15년(1433) 봄 풍증 치료차 한 달 동안 온천 요양, 세종 23년(1441) 봄 어두운 곳은 지팡이를 짚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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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원리에 있는 기차역. 조치원역의 역명은 조치원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조치원역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收奪)[강제로 빼앗음]정책을 쉽게 추진하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해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과 함께 주요 거점 철도역으로 설치되었다. 조치원은 경부선이 개통될 무렵에도 70호 정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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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희, 성중의, 성한취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창녕성씨는 금남면 달전리에 회곡공파 성희가 15세기 중엽, 연서면 와촌리에 동고동파 성중의가 15세기 후반, 연동면 내판리에 상곡공파 성한취가 18세기 중엽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해 오고 있다. 창녕성씨(昌寧成氏)는 고려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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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철을 이용하여 도구로 사용하게 된 때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대. 일반적으로 철기시대(鐵器時代)는 철(鐵)을 도구의 주 재료로 사용한 시대이며, 철기는 청동기를 잇는 새로운 금속기로 인류가 도시나 국가를 형성한 문명단계에 들어서면서 등장하였다. 철기 사용은 인간의 생활문화 양상을 여러모로 변화시켰다. 특히 철제 농공구의 출현으로 농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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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부를 시조로 하고 심한기, 심익도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청송심씨는 곡산공파 심한기가 17세기 소정면 대곡리에, 인수우윤공파 심익도가 18세기 금남면 석교리에 각각 입향하여 세거하여 오고 있다. 청송심씨(靑松沈氏)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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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張旭鎭)[1917~1990]은 1918년 1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의 대지주 가문에서 4형제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욱진의 아버지는 시·서·화에 안목이 있어서 스스로 병풍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렸고, 아이들에게도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장욱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였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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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생천부락의 한치마봉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한치마봉」은 최치원이 지방의 태수로 있을 때 최치원 딸과 아들이 경쟁으로 한치마봉이라는 성을 쌓았다는 성곽설화이다.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최치원이 지방의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최치원에겐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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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부에 위치하고 2012년에 17번째 광역지방자치단체로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설립 과정과 세종특별자치시 이전 연기군 및 현재의 행정체계. 세종특별자치시는 충청남도 연기군을 중심으로 공주시 일원,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일부를 수용하여 조성되었다. 청원군 부용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충청남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세종특별자치시이다. 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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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10년 11월 29일 전체 회의를 열고 세종특별자치시의 법적 지위와 관할 구역, 사무 범위 등을 담고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을 통과시켰다. 「세종특별자치시 설치법」에서 세종특별자치시의 공식 명칭은 정부 직할의 ‘세종특별자치시’로 하였고, 관할 구역 내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를 두지 않도록 하였다. 공식 출범은 2012년 7월 1일로 정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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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건설 목적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이다. 따라서 세종특별자치시가 해결하여야 할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는 ‘행정수도 건설’과 ‘자족도시 완성’이다. 2014년 발표한 ‘2030 세종 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어울림과 창조의 일류도시 세종’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2030년 계획인구 50만 명의 자족도시, 건설지역과 읍·면 지역을 융합하는 생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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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수도론은 무려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계룡산 밑에 새로운 수도를 만들기로 하고 착공까지 하였지만 풍수상의 문제와 위치가 다소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따라 결국 한양을 수도로 정한다. 지금도 그 ‘도성터’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고, 그 때문에 그 일대를 ‘신도안’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충청권 수도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민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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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의 정치와 사상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사족(士族)[문벌이 좋은 집안]으로, 호서 지역의 사족 활동에 연계된 가문과 인물을 말한다. 조선시대는 양반사족의 향촌 지배력이 강한 시대였다. 충청우도의 연기와 전의 지역은 토착성씨 및 사족가문의 활동이 주목되는 곳이었다. 세종 지역은 호서사족 활동의 중심지 공주·회덕과 인접한 지역으로, 사족들이 처향(妻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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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일섭(洪日燮)[1878~1935]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신대리 출신으로 연기군 조치원읍 조치원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홍일섭은 1919년 3월 30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조치원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앞서 연기청년회 간부인 맹의섭(孟義燮)·김재형(金在衡)·전병수(全炳壽)·이은식(李...